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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프로필 사망 자살 유서 이명박 결별이유뉴스 2019. 7. 17. 04:44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숨졌습니다. 7월 16일 서울 홍은동 자택 인근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16일 오후 3시 40분경 정두언의 부인이 "남편이 집에 유서를 써놓고 산에 갔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 25분에 경찰이 숨진 정두언 전 의원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정 전 의원은 2시간 전쯤 운전기사가 몬 자동차에서 내려서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경찰은 정 의원이 자살을 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가깝게 지내는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딸이 유서를 확인했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고 특별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주 안부 전화를 할 때만 해도 극단적 선택을 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명복을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우울증은 정치를 하며 숙명처럼 지니는 것이다. 상태가 호전되어 식당도 하고 방송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유서도 있는 것으로 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긴 하네요.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았는데 그리도 마음의 고생이 심한 줄은 몰랐네요. 방송에서는 아주 정상적으로 잘 하더니 나름 마음의 멍울을 안고 살았나 봅니다.
그럼 정두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최근에 일본 불매 운동에 반대를 했던 정두언입니다. 지난 15일 MBC FM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서 정청래 전 의원과 한일갈등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이날 정두언은 대통령의 일본 관련 강성 발언에 "WTO 문제를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일본은 우대국가에서 보통국가로 가는 건데 무슨 잘못이냐고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은 우리보다 일본 쪽을 더 옹호하고 두둔할 것이다. 우리가 더 궁지에 몰린 건데 우리가 (수입 금지 물품을) 대체할 수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삼성에서 매년 연구-개발에 19조씩 투자하는데, 그래도 안 되니까 수입하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MBN 시사프로그램인 '판도라'와 KBS '사사건건'에도 고정 출연을 해왔죠. 거기서도 시사에 대해서 여러 논평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재 방송사에서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혼란이 있을 겁니다.
정두언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관계였다가 어느 시점부터 이명박을 마구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다스 관련해서도 많은 증언을 하였었죠.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에 마구 비판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철학이 확실히 선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명박도 이명박이지만 박근혜와 그 추종 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습니다. 새누리당 당시 김무성 대표로부터 비박 살생부 명단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언론에 공개해서 큰 파장을 일으켰죠.
정두언의 프로필도 알아봅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57년생으로서 올해 63세입니다. 아직도 열심히 활동할 나이인데 너무나도 안타깝네요. 서울에서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출생했고요.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군수였는데, 집안이 망해서 아버지는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정성태 전 국회부의장의 운전기사로 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두언의 아버지와 정성태와는 5촌이라고 하네요.
정두언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펴서 자녀들을 교육했는데요. 아버지는 가정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데다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일이 잦았답니다. 아무래도 마음은 안 좋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다독이면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정두언은 명문으로 유명한 경기고 출신입니다. 그후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요. 행정고시에도 합격하면서 공직에 들어왔습니다. 행정사무관 시보 임용 후에 정무 제2장관실에 배속되었는데요. 그때 노태우 정무 제2장관을 보좌하기 시작했고 이후 20년 동안 정무장관실, 문화체육부, 국무총리 행정부조정실, 국무총리 비서실직을 맡았습니다.
2000년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권유해서 국무총리실에 사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2004년에는 한나라당 공천을 통해서 제17대,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합니다. 그후에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는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3선을 한 대단한 업적입니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낙선을 했는데요. 그후 방송국에 나와서 시사전문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정두언과 이명박이 결별한 이유를 잠시 봅니다. 사실 정두언이 이명박과 척을 지게 된 것도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2선 후퇴를 강력히 요구하다가 관계가 틀어진 겁니다. 그 당시 이상득과 파워게임에서 밀렸고 이명박 뒷조사한다고 의심샀고요. 결국 이명박이 열 받아서 내쳤다고 합니다. 그후로 이명박을 자주 까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도 여러 번 봤었지요.
정두언은 시사전문가로 활동하면서도 최근에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퓨전 일식집을 냈다고 합니다. 재밌는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정치와 요식업이 안 어울리는 거 같은데도 하는 거 보면 마인드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정두언은 앨범도 냈습니다. 2009년 10월에 희망이라는 타이틀의 앨범도 냈고요. 그전에는3장의 앨범을 냈었습니다. 총 4장을 낼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과거 서울대 다니던 시절에 록밴드를 결성했다고 하던데 그때의 경력과도 무관치 않겠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에 이명박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를 검증하는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다 밝히면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도 못 먹을 거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이 발언이 있고 나서 얼마 뒤에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났죠. 이런 거 보면 정두언이 정치계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정두언은 한때 구치소 생활을 한 적도 있습니다. 2012년 솔로몬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인해서 이상득 전 의원과 함게 기소되어서 10개월 정도 감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을 하면서 무죄로 드러났고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 6천만원을 받고 풀려납니다. 그당시 받은 6천만원은 모두 다 사회에 기부했지요.
정두언은 2018년 12월에 일식집을 내고 나서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임금 상승 정책을 비판했었죠. 비판하면 정두언이죠. 뭐 그래도 장사는 잘 되었답니다.
그가 비록 자살로 생은 마감했지만 정치 인생에서 여러 획을 그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 제대로 쓴소리를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을 막 했던 몇 안 되는 정치인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승에는 없지만 그와 같은 인물이 여러 명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선 편안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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